2월 12일 설교

작성자
이상호
작성일
2023-02-12 17:51
조회
475

성 경 : 34 : 1 8


제 목 : 예수를 깊이 알자


 

  1월 첫째 주일에 받았던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살다가 주일을 맞아 예배당에 나와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는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선포된 말씀을 통해 성자 예수님을 더욱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편 34편 표제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로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이스라엘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블레셋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때 한 신하가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저 사람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를 살려두면 안 됩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미친 척 하다가 쫓겨나서 본시를 지은 것으로 사무엘상 2110절부터 222과 연관이 있습니다.

  다윗은 삶과 죽음이 한 걸음 차이인 상황에서도 시편 말씀을 읽는 성도들에게

시34:8=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고 선언했습니다.

맛보다가 히브리어로는 ‘분별하기 위해 약간 먹다. 또는 마음으로 인식하다’로

다윗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선하심을 경험적으로 생생하게 느껴볼 것을 권면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을 맛보아 알라 권면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34:1=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항상 송축하다는 삶의 모든 정황에서, 즉 번성할 때나 실패해서 곤고함에 빠졌을 때 또는 안전할 때나 위험할 때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윗이 찬양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대문짝에 그적거리고 수염에 침을 흘리면서 목숨을 구하려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삼상21:13)

이에 한 주석가는 대문짝에 그적거린 것은 최대한 미친 척 연기를 위해서 대문을 주먹으로 쾅쾅 때리면서 손톱으로 대문에 낙서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전혀 찬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찬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맛보아 알라고 말하는 이유는,

I 예수님이 들어주시기 때문


  시34:2=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곤고한 자”는 일반적으로 고통당하는 자를 가리키나, 다윗은 고통당하는 자보다는 고통을 통해서 인내와 겸손을 배운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보다 훨씬 키 큰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이 일로 목동에서 갑작스럽게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되어 부하들을 거느리고 전쟁터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사울은 그런 그가 너무나도 든든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곁을 지키게 했으나 백성들은 왕인 자기보다는 다윗을 인정하고 더 높이 찬양하는 것에 질투가 났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장군이요, 사울의 둘째 사위인 다윗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많은 환난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응답을 체험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고 인내를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면서

삼상24:14=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영광스럽고, 위엄 있는 호칭입니다. 반면 죽은 개나 벼룩은 가장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이들은 해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존재로 사울에 대한 자신의 상대적 열등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다가 내일 죽어도 겁내지 않았으며, 죽음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다 보니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었고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시34:5=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그들은은 17절과 연결된 ‘의인’으로 ‘의인들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의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히1:3=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의 풍성한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과 함께 하시고 만물을 통치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그들에게 광채가 나타나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다윗은 환난 중에도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메시아의 구원을 찬송했습니다.

II 예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


  시34:7=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메시아는 다윗의 고백대로 다윗을 보호해주셨습니다.

결국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데 실패했지만, 다윗은 사울 다음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인 천사를 가리키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출3: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모세가 목동으로 양을 치고 있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사십 세가 될 때까지 애굽 왕궁에서 왕자 신분으로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뛰어난 전투경험과 두각을 나타내는 학문으로 차기 왕권을 도전하는 장래가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적들의 음모로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애굽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창46:34)

왕자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목동이 되었으니 얼마나 상실감이 컸겠습니까?

하지만 사십년 동안 목동의 삶을 살면서 인내와 겸손을 배웠습니다.

민12: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하나님께서도 인정한 온화한 성품, 다윗이 말하는 곤고한 사람의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 보건대 여호와의 사자는 곧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침내 모세는 메시아를 만났고, 명령에 따라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으로 갔습니다.

  구약의 다윗이나 모세만 메시아를 맛보아 안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경에도 메시아를 분명히 알고 그분의 보호를 체험하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습니다.

고전11: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 누구도 누군가의 선생이 되어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처럼만 하라는 말을 쉽게 못합니다.

또 아무나 이런 말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자신의 편지에서

약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고 충고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전11:1, 빌3:17)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오직 그분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하면서 모든 고난과 환난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찬송하면서 회당에서나 교도소에서나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은 조상들의 믿음을 본받기 위함으로 그들의 삶을 통해 예수를 발견하고 발견한 예수를 맛보아 그들의 예수가 아닌 내 예수가 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 Philadelphia에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청소년 전도에 힘쓰던 Eliza Hewitt여사는 한 아이가 돌로 자신의 등을 때리는 바람에 7개월 동안 움직이지도 못한 채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해야하는 줄 알면서도 그 아이가 너무 밉고 갑작스러운 시련으로 자신의 신앙까지 흔들렸습니다. 그녀는 자살 충동을 일으키면서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던 어느 날, 한 흑인 아줌마가 자기도 잘 아는 찬송가를 흥얼거리면서 밝은 표정으로 청소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녀는 아줌마에게 ‘청소부 주제에 무슨 노래를 불러’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내 모든 형편을 찬송으로 부를 수 있는 힘을 주셨는데 즐겁지 않나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히윗은 모든 형편을 찬송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주님이 주셨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크게 와 닿지 않았겠지만 평생을 남의 집에서 청소하는 아줌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큰 충격으로 받았고 모든 형편을 찬송으로 바꾸는 힘에 대해 묵상하다가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예수를 알게 하고 내 마음에 교훈이 되도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라는 새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를 작사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몰랐지만 정작 힘들고 고달파 삶에 즐거움이 없고 하나님에 대해 의심이 들 때도 예수를 잘 믿는다면 그것은 정말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예수님을 모르면서 주변 환경에 따라 믿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복음전파하면서 나를 본받으라고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인내와 겸손을 배우면서 여호와를 맛보아 알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인고의 세월 속에서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분명히 알았고 죽음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히3: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믿는 도리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믿음의 응답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앞에서 누구의 고백이 아닌 자신의 순수한 고백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원자요,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신 분이요, 십자가에서 죽었으나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가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적인 예수님보다는 직접 체험해서 깨달은 예수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입맛으로는 알 수 없지만, 삶의 체험을 통해서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말할 수 없고, 억울함을 제대로 하소연할 수 없고, 인종차별을 받은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으로만 불안하게 사는 현재, 해외에서 서로 아픔을 보듬어주어도 부족한 형편에 같은 동포끼리 시기와 질투로 편 가르기 하는 모습은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다윗이나 모세처럼 예수님을 맛보아 알고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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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2 17:52
    영상 제작이 안 되어 본문을 올립니다. 묵상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