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설교

작성자
이상호
작성일
2023-08-21 11:00
조회
247
성 경 : 6 : 1 8,  제 목 : 완전한 데로 나아감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께 우리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행을 위해 짐을 정리하다보면 꼭 가져야할 것과 가지고 가면 안 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런 계산들을 하지 않고 무조건 넣다가는 공항에서 Check-in 할 때 낭패를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주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다보면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분별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 삼자가 볼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의 삶의 길라잡이를 위해서 히브리서 6장이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절 시작을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려라”고 명령합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는 2절에 기록된 “죽은 행실들과 회개함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로 유대교의 관습과 연결됩니다.

‘죽은 행실’은 생명을 주지 못하는 율법의 제사의식으로, 전혀 변화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인 미움과 질투와 거짓과 탐욕과 우상숭배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그들의 삶은 우상숭배로 가득했으며 거짓과 탐욕이 넘쳐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난 다음에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함에도 그들은 회개 이후에 진실한 삶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말1: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순결한 예배를 원하시는데, 타락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한 제물(레22:20)마저 마음대로 고쳐서 흠이 있거나 저는 것이나 병든 것까지 하나님께 드려 율법의 정신을 훼손했습니다.

끝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하다가 급기야는 하나님의 책망에 반론까지 펼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성도들에게 유대교인들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본받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닦지 말라”는 행동을 답습하지 말라는 의미지만, 지켜야 할 경계선을 강조한 것입니다.

“선”은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넘느냐, 넘지 않느냐에 따라 정직과 부정으로 갈립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은 철책 선을 넘는 순간 국가보안법이 적용됩니다.

운동경기에서는 정해진 선을 넘는 순간 실책이 되어 상대에게 공격권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아예 아웃이 되는 경기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지켜야 할 경계선을 넘는 순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고, 죄를 범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히브리서 저자는 “완전한 데로 나가라(2절)”고 권면했습니다.

“완전한”이 헬라어로는 ‘성숙’으로 신앙공동체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전인격적인 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완전한 영역에 이르기 위해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I 신앙의 성장을 보여라.

히6: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다”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조건문입니다.

사람들은 계획을 세울 때 Plan A와 B를 세워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게 됩니다.

절대로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고집을 피우지 못하는 것은 변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에는 Plan B가 절대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시고 충분히 그것을 성취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완벽한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만 하면 반드시 성장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로 시작된 신앙생활이, 우리의 신앙성장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 중앙무대에서 항상 밀려나는 낙후된 갈릴리지역, 지성인들조차도 “갈릴리지역에서 선지자가 나겠느냐 생각해 보라”고 비아냥하는 변방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앙무대에 있는 유대인들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랍비인 예수님이 이곳에서 오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고 심지어 죽은 자들을 살려주었고, 말씀을 전파하는데 그동안 랍비들에게 배웠던 말씀과는 전혀 새로운 내용을 듣게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먹을 것도 해결되니 대중들의 관심이 젊은 랍비 예수에게로 집중되었고, 종교지도자들은 불안해하며 견제를 넘어 죽일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런 예수님 밑에 맨 밑바닥에서 생활한 갈릴리지역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랍시고 많은 군중들 앞에 있으니 얼마나 기세가 등등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예수님이 잡히자 제자들은 도망갔고, 빌라도 총독의 선고로 끝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자 선생을 잃은 제자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 자신들이 맡아야 할 예수님 이후의 사역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은 서슬 퍼런 종교지도자들의 협박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만 듣겠다. 너희들이 죽인 예수는 메시아다”고 전파했으니 이거야 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성장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성장은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인 성령에 참여한바 되더니 예수님께 배웠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뒤로 물러나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교하지도 않고 핍박과 고통에도 오직 예수만 붙잡는 특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과거의 실수나 연약함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장하도록 성령을 통해서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신앙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이제는 지켜야할 선이 있듯이 경계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II 타락을 경계하십시오.

히6: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말씀은 6절부터 시작되는 타락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결론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경계선을 지키지 못하고 그것을 넘음으로 더 이상 회개와 죄 사함의 필요성을 모르는 악한 자들의 마지막 모습처럼 되지 말고 항상 깨어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하라는 권면입니다.

우리 안에는 정욕과 탐심이 가득한 옛날을 그리워하는 유혹과, 새롭고 비전이 있는 선한 삶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영성이 좋고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는 옛 성품을 청산하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일로 시험에 들어 낙심하면, 죽었다고 생각했던 옛 성품이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옛날에 열심히 놀았던 탐욕과 정욕의 삶을 살도록 유혹을 받게 됩니다.

시험에 들어 낙심하면 찬양하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모든 것이 귀찮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예수님의 피로 직접 세우신 믿음공동체인 교회 출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타락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연약한 인생의 삶을 아시는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끊임없이 공급해주십니다.

7절의 “자주 내리는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자연적인 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은혜와 역사를 계속해서 내려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기적과 먹을 것 등이 해결될 때에는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지 군중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알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는 황제의 개선행진처럼 자기들의 겉옷을 바닥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면서 목청껏 소리를 높여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로마 군사들에게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린 채 자기들 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향한 삶을 던져버리는 배신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비유를 곁들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면서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이 중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은 인간의 마음을 비유합니다.

마13: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어느 정도 성장하는 동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엉킨 가시 때문에 잎이 찢어지고 성장이 멈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 어느 순간까지는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지만, 가시떨기가 상징하는 유혹이나 탐욕, 시기, 질투, 세상의 염려 등을 뚫지 못하고 붙잡힐 경우에는 더 이상의 신앙성장을 보이지 못하고 마침내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세상의 유혹이나 사탄의 시험에서 벗어나도록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지만 그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 유혹에 빠진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이나 자비나 사랑이 없이 그 가지들을 잘라내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선을 넘는 실수나 위반을 하지 않도록 경계선을 확인시켜주는 히브리서 말씀을 기억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적과 기사에만 관심을 가졌던 군중들과 제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보이지 않자 예수님을 배반하고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체험했을 때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만 순종하면서 ‘너희 죽인 예수가 메시아다’는 신앙의 성장을 보였고, 복음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은 신앙성장을 이루어 하나님의 일에 힘쓰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성장을 방해하는 옛 성품들을 경계하며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늘 훈련해야 합니다.

적과 대치하는 군인처럼, 선을 지키면서 경기하는 운동선수처럼 현실에서 다가오는 낙심과 두려움, 불안과 염려, 비교 등을 주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으로 이겨내어 완전한 데로 나가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갈 때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성도를 통해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우리 모두는 기쁨으로 주님을 섬겨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에배를 드린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두 일어나서 Liebevoll 찬양팀과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를 부른 후에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A M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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