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설교 원고

작성자
이상호
작성일
2024-02-12 08:13
조회
163
성 경 : 막 13 : 32 - 37
제 목 : 주의 재림을 준비하라

다시 오실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성도님들께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믿음의 깊이가 깊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타종교를 비롯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끼리끼리 모이는 편협적인 종교집단이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떤 종교의 신보다도 “자신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이며, 반드시 세상에 다시 와서 심판하겠다.”고 명확하게 선언하셨습니다.
막13:26=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초라하고 쓸쓸하게 세상에 오셨던 초림 예수님과 대조되는 영광스러운 재림 예수님의 장면입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스러운 임재를 상징하는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 세상에 오신 초림 예수님에 비해 재림 예수님은 심판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으로 다시 오실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가복음 13장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3장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기 때문에 주의하고 깨어 기다려야 한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언제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깨어 기다려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재차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나타나는 세상정세를 자세하게 가르쳐주셨는데, 그 내용이 5~37절까지 기록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첫째. 세상은 심판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거짓 그리스도가 많다.
지구촌 구석구석에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나 순진한 성도들을 믿음에서 떨어지도록 유혹하는데, 현재도 한국에만 거짓 그리스도가 30명이 넘을 정도이니 성도는 깨어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기근과 지진과 난리의 소문이 끊이질 않는다.
종말의 현상으로 나라간의 전쟁과 민족과 민족이 서로 죽이는 일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환경파괴로 지구촌은 몸살을 앓으면서 각종 재난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점점 난폭해지면서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자식들이 부모님을 대적하게 되고, 세계의 각국 정부들은 기독교를 박해함으로 교회 내에서도 성도사이에 배신자와 배교자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현재 예언의 일부분이 성취되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기근과 지진과 화산 폭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특히 스페인 남부 카탈루냐는 500년만의 기록적인 가뭄으로 저수지 건설로 물속에 잠겼던 “산트 로마 데사우 교회”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었고, 식수보호를 위해 저수지에서 서식하는 약16만 톤의 물고기를 잡아야만 한다는 신문기사도 소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한 마지막 교훈으로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막13:28=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유대인들 사이에서 무화과나무의 상태는 계절을 분별하는데 중요한 단서로 여겼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지나, 봄이 되면 가지마다 수액이 올라와 잎을 내기 시작하는데 이 때 사람들은 여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참 더운 여름이 되면 무화과 열매를 수확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세상 멸망이 가까움을 알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32~37절은 시대를 분별하면서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깨어 있으라”를 세 번이나 말씀하시면서 “주의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깨어 있다”의 반대는 ‘자다’로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해이해지는 삶을 상징합니다.
헬라어에서 “깨어 있다”는 항상 그리고 계속을 지닌 명령형으로 ‘언제나 너희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어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는

I 깨어 있다 의미
막13:34=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마태는 이 말씀에 ‘주인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타국으로 갔다(마24:45)’고 보충설명하면서, 외국에 출타했던 주인이 돌아왔을 때 자신이 믿고 맡겼던 종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 충성스러운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면 후한 상을 줄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물론 이 내용에서 타국으로 출타한 주인을 다시 오실 예수님으로, 종들은 교회를 맡긴 성도들을 상징하고, 외국으로 출타하기 전 주인이 문지기에게 “깨어 있어라”고 명령한 것은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지킬 것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교회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마치 적군이 공격할 침투루트에 미리 도착해서 밤을 새면서 24시간 감시하는 군사들과 같습니다.
만일 보초를 서는 군인이 피곤하고 졸리다 면서 잠을 자면 그로 인하여 막사에서 잠을 자는 다른 군인들은 물론 적의 공격으로 후방에서 지내는 무고한 시민들까지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사탄의 공격으로 교회가 위기를 맞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깨어 있음에는 영적 해이해짐이 없도록 기도에 집중해야 함을 요구합니다.
신학자 c. s. Luis는 “마귀가 가장 다루기 쉬운 성도는 마귀의 존재를 믿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성도”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알고 그를 물리치기 위한 훈련과 무기를 갖춘다면 절대 패배할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전투에 대비하는 훈련을 게을리 할 때는 반드시 패배합니다.
눅17: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누가는 예수님께서 세상 심판의 때가 가깝기 전에 나타날 현상에 대해 구약시대 믿음의 조상인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셨음을 기록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산꼭대기에서 120년 동안 큰 배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노아가 미쳤다고 조롱하면서 그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자 노아에게 짐승들과 식구들을 모두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 명령하시고 직접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그리고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방주에 들어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방주가 있는 산으로 올라가서 살려달라고 문을 두드리고 아우성쳐도 문은 결코 열리지 않았고 호흡하는 모든 것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는 세상 평화에 도취해서 무슨 종말이 오느냐고 비웃던 사람들의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평화나 부귀영화에 심취해서 하나님의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바울사도가 외친 것처럼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해야(고전16:13)”합니다.

II 주의하라
막13:37=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세 번이나 깨어 있으라고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너희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확인하셨습니다.
“너희”는 제자들을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앞으로 복음을 듣게 될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말인즉슨 주님의 재림에 대해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지구의 종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입니다.
지구의 종말이 닥칠 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하라”에 대한 헬라어로는 “인지하거나 보는 능력”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마가는 이방독자들에게 하나님을 보는 능력을 갖추라는 의미로 주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해병대 훈련장에서는 “훈련 때 땀을 많이 흘리면 전쟁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극한의 훈련을 한다고 전해집니다.
훈련을 실전처럼 얼마나 많이 했느냐는 훈련의 양보다는 어떤 훈련을 얼마만큼 실전처럼 임했느냐는 훈련의 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이성적으로나 지적으로 깨어 있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면 언제든지 사탄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배교와 배신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으로 배교나 배신자의 삶을 살지 않으려면 항상 그리고 계속적으로 깨어서 영적 분별력과 기도의 능력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시대를 잘 분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지켜야하며, 성도들과의 영적 교제를 통해서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계2:10=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의 인도로 천국을 바라본 사도 요한에게 서머나 교회에 대해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성도는 절대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는 교회에도 사탄의 시험이 닥쳐서 성도 중 몇 사람은 옥에 갇히거나 순교당하는 심각한 고난이나 핍박을 받을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 고난을 참고 견디는 자에게는 “생명의 관”을 주시는데, 신앙으로 승리하는 사람에게 씌워주는 “화관”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고난 당하는 일이 없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죽도록 충성하면서 인내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달려갈 때, 영생을 얻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인내로서 고난을 견디고 승리한 성도들에게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계7:17)”고 증언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우릴 얼마나 안심하게 만드는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게 외국생활 하는 것도 반드시 돌아갈 곳이 있기에 어려움을 견디는 것입니다.
언어 부족으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도 이겨내는 것은 반드시 돌아갈 곳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시고,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견디고 인내로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는다면 굳이 힘들게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픔과 어려움을 참으면서까지 신앙생활 할 필요가 없고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재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음을 믿고 그에 대한 영적인 준비를 대비하면서 지내십니까? 아니면
무슨 지구의 종말이 오느냐면서 미래에 대한 아무 준비 없이 무사태평하게 지내십니까?
노아시대 사람들은 무슨 심판이냐면서 노아의 말과 행동을 무시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이 말인즉슨 하나님의 말씀이 과거의 역사 기록이나 설화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현대에도 말씀을 읽고,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그 때와 똑같이 역사하심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지구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을 기록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구름타시고 영광과 위엄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심을 굳게 믿고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를 구원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는 신앙생활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고, 봉사와 예배는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항상 깨어 있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얻어서 세상을 분별하여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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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12 08:15
    인터넷 사정으로 동영상 녹화가 원활하게 녹음 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