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프레스 KBoard 피드 http://brehanmin.de/wp-content/plugins/kboard/rss.php 워드프레스 KBoard 피드 <![CDATA[고난주간 아침 기도회]]> Mon, 18 Mar 2024 15:27:53 +0000 자유게시판 <![CDATA[2월 11일 설교 원고]]> Mon, 12 Feb 2024 08:13:42 +0000 자유게시판 <![CDATA[2024년 신년 기도회]]> 일시 : 2024년 1월 1일부터 6일까지 오전 7시 장소 : 예배당 성도님들의 동참을 소망합니다.]]> Fri, 29 Dec 2023 10:57:02 +0000 자유게시판 <![CDATA[8월 20일 설교]]> 성 경 : 6 : 1 8,  제 목 : 완전한 데로 나아감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께 우리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행을 위해 짐을 정리하다보면 꼭 가져야할 것과 가지고 가면 안 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런 계산들을 하지 않고 무조건 넣다가는 공항에서 Check-in 할 때 낭패를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주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다보면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분별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 삼자가 볼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의 삶의 길라잡이를 위해서 히브리서 6장이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절 시작을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려라”고 명령합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는 2절에 기록된 “죽은 행실들과 회개함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로 유대교의 관습과 연결됩니다. ‘죽은 행실’은 생명을 주지 못하는 율법의 제사의식으로, 전혀 변화되지 않는 인간의 속성인 미움과 질투와 거짓과 탐욕과 우상숭배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그들의 삶은 우상숭배로 가득했으며 거짓과 탐욕이 넘쳐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난 다음에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함에도 그들은 회개 이후에 진실한 삶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말1: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순결한 예배를 원하시는데, 타락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한 제물(레22:20)마저 마음대로 고쳐서 흠이 있거나 저는 것이나 병든 것까지 하나님께 드려 율법의 정신을 훼손했습니다. 끝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하다가 급기야는 하나님의 책망에 반론까지 펼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성도들에게 유대교인들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본받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닦지 말라”는 행동을 답습하지 말라는 의미지만, 지켜야 할 경계선을 강조한 것입니다. “선”은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넘느냐, 넘지 않느냐에 따라 정직과 부정으로 갈립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은 철책 선을 넘는 순간 국가보안법이 적용됩니다. 운동경기에서는 정해진 선을 넘는 순간 실책이 되어 상대에게 공격권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아예 아웃이 되는 경기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지켜야 할 경계선을 넘는 순간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고, 죄를 범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히브리서 저자는 “완전한 데로 나가라(2절)”고 권면했습니다. “완전한”이 헬라어로는 ‘성숙’으로 신앙공동체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전인격적인 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완전한 영역에 이르기 위해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I 신앙의 성장을 보여라. 히6: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다”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조건문입니다. 사람들은 계획을 세울 때 Plan A와 B를 세워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게 됩니다. 절대로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고집을 피우지 못하는 것은 변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에는 Plan B가 절대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시고 충분히 그것을 성취할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완벽한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만 하면 반드시 성장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로 시작된 신앙생활이, 우리의 신앙성장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해 중앙무대에서 항상 밀려나는 낙후된 갈릴리지역, 지성인들조차도 “갈릴리지역에서 선지자가 나겠느냐 생각해 보라”고 비아냥하는 변방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앙무대에 있는 유대인들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랍비인 예수님이 이곳에서 오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고 심지어 죽은 자들을 살려주었고, 말씀을 전파하는데 그동안 랍비들에게 배웠던 말씀과는 전혀 새로운 내용을 듣게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먹을 것도 해결되니 대중들의 관심이 젊은 랍비 예수에게로 집중되었고, 종교지도자들은 불안해하며 견제를 넘어 죽일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런 예수님 밑에 맨 밑바닥에서 생활한 갈릴리지역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랍시고 많은 군중들 앞에 있으니 얼마나 기세가 등등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예수님이 잡히자 제자들은 도망갔고, 빌라도 총독의 선고로 끝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자 선생을 잃은 제자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 자신들이 맡아야 할 예수님 이후의 사역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은 서슬 퍼런 종교지도자들의 협박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만 듣겠다. 너희들이 죽인 예수는 메시아다”고 전파했으니 이거야 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성장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성장은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인 성령에 참여한바 되더니 예수님께 배웠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뒤로 물러나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교하지도 않고 핍박과 고통에도 오직 예수만 붙잡는 특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과거의 실수나 연약함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성장하도록 성령을 통해서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신앙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이제는 지켜야할 선이 있듯이 경계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II 타락을 경계하십시오. 히6: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말씀은 6절부터 시작되는 타락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결론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경계선을 지키지 못하고 그것을 넘음으로 더 이상 회개와 죄 사함의 필요성을 모르는 악한 자들의 마지막 모습처럼 되지 말고 항상 깨어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하라는 권면입니다. 우리 안에는 정욕과 탐심이 가득한 옛날을 그리워하는 유혹과, 새롭고 비전이 있는 선한 삶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영성이 좋고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는 옛 성품을 청산하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일로 시험에 들어 낙심하면, 죽었다고 생각했던 옛 성품이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옛날에 열심히 놀았던 탐욕과 정욕의 삶을 살도록 유혹을 받게 됩니다. 시험에 들어 낙심하면 찬양하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모든 것이 귀찮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예수님의 피로 직접 세우신 믿음공동체인 교회 출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타락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연약한 인생의 삶을 아시는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끊임없이 공급해주십니다. 7절의 “자주 내리는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자연적인 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은혜와 역사를 계속해서 내려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기적과 먹을 것 등이 해결될 때에는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지 군중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알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는 황제의 개선행진처럼 자기들의 겉옷을 바닥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면서 목청껏 소리를 높여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로마 군사들에게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린 채 자기들 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향한 삶을 던져버리는 배신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비유를 곁들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면서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이 중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은 인간의 마음을 비유합니다. 마13: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어느 정도 성장하는 동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엉킨 가시 때문에 잎이 찢어지고 성장이 멈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 어느 순간까지는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지만, 가시떨기가 상징하는 유혹이나 탐욕, 시기, 질투, 세상의 염려 등을 뚫지 못하고 붙잡힐 경우에는 더 이상의 신앙성장을 보이지 못하고 마침내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세상의 유혹이나 사탄의 시험에서 벗어나도록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지만 그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 유혹에 빠진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이나 자비나 사랑이 없이 그 가지들을 잘라내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선을 넘는 실수나 위반을 하지 않도록 경계선을 확인시켜주는 히브리서 말씀을 기억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적과 기사에만 관심을 가졌던 군중들과 제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보이지 않자 예수님을 배반하고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체험했을 때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만 순종하면서 ‘너희 죽인 예수가 메시아다’는 신앙의 성장을 보였고, 복음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은 신앙성장을 이루어 하나님의 일에 힘쓰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성장을 방해하는 옛 성품들을 경계하며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늘 훈련해야 합니다. 적과 대치하는 군인처럼, 선을 지키면서 경기하는 운동선수처럼 현실에서 다가오는 낙심과 두려움, 불안과 염려, 비교 등을 주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으로 이겨내어 완전한 데로 나가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갈 때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성도를 통해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우리 모두는 기쁨으로 주님을 섬겨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에배를 드린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두 일어나서 Liebevoll 찬양팀과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를 부른 후에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A MEN -]]> Mon, 21 Aug 2023 11:00:00 +0000 자유게시판 <![CDATA[8월 6일 설교]]> 성 경 : 13 : 9 17 제 목 : 예수 성도의 스승 13장 전반부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성도들의 삶에 관한 지침서입니다. 우린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유행이나 삶의 패턴에 마음을 빼앗겨 요동하거나 지나친 경쟁지향주의에 빠져서 주변을 돌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성도로서 구원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함께 가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자신의 역할이나 역량이 매우 부족함을 느끼고 좌절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을 통해서 성도들의 위대한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조명하면서 다른 것에서 삶의 교훈을 찾지 말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라고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에게서 배워야할 것이 대해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활동했던 주후 64년경이나 21세기 최첨단의 사회를 사는 지금이나, 기독교인들에게 여전히 이슈가 되는 것은 이단들의 활동입니다. 당시에도 다양한 이단들이 활동했는데 정해진 율법 외에 갖가지 규칙을 덧붙여서 통제하는 유대율법주의자들이 있었고, 영지주의 세속주의 쾌락주의 물질주의 등 다양한 이단들이 활동하면서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고 교회에서 성경교사로 활동하면서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이 상황을 잘 아는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주의자들의 교리를 예로 들어 할례나 레위기에 기록된 음식들이 구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유대인에게는 제단이 있는데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가서 자신과 온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날에는 레4:5~12절의 말씀대로 잡은 고기를 영문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고기를 다 불태우기 때문에 그날은 제단을 섬기는 사람들도 고기를 먹지 못한다면서 음식이 그 사람을 은혜로 인도하지 못함을 강조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이 속죄의 제물로 잡은 황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속죄의 피가 있듯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문 밖에 위치한 골고다로 올라가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비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는 대제사장에 의해 영문 밖에서 불태워진 희생의 피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치욕 예수님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말하면서 받은 모욕처럼,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받아야 할 모욕과 비난과 불명예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변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받는 모욕과 치욕의 결과인 고난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배교를 생각하고,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면서 예수님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배교하거나 배교를 생각하는 사람은 장차 올 천국을 믿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고난과 핍박을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킨 성도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눈물이 없고 죽음이나 고통, 해와 빛이 필요 없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배교를 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교훈을 지키기 위해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5절에서 표현하는 찬송의 제사는 유대교에서 제사장들의 인도로 드려지는 찬양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드려지는 찬양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었음을 찬양하는 것으로, 이것이 항상있어야 하는 이유는, 찬송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기적들을 체험하면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을 매일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찬양의 제사를 입술의 열매라고 확대해석했습니다. 입술의 열매에 대한 헬라어는 감사제와 감사 찬송 때 사용하는 말에 대한 히브리어 관용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올리는 찬양이 포함된,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아주셨다는 감사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윗이 성막제사에서 성가대와 지휘자와 작곡가를 임명한 것도 하나님께 동물제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제사를 받으셨다는 믿음의 확신으로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지만, 내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교회예배에서 말씀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회중찬송과 성가대의 찬양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Libevoll 찬양 팀의 인도로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입술의 열매를 드릴 수 있어서 매우 기쁘고 감사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 입술의 열매인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찬양의 제사와 입술의 열매를 통해 성도에게 나타나는 좋은 모습은 선행과 나눔입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적인 삶으로 주변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활동하는 시기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여서 전도자들을 대접하지 못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주변에 연약한 사람들이 있어도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약2:15~16=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라고 한탄했겠습니까? 도와줄 능력이 있음에도 평안히 가라. 따뜻하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는 말만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요, 위선적인 믿음입니다. 야고보가 지적한 것은 믿음 안에서 하나인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면서 말만하는 것은 죽은 믿음이요,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가 아니라는 책망입니다. 힘들고 어려운데 한가하게 찬양할 시간이 있겠느냐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힘들어 짜증나고 고통스러워 지금 이 순간을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 찬양하고 기도하라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찬양과 기도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행16:25=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벌 받을 필요도, 옥에 갇힐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으로 오해한 상관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변론도 하지 못하고 죽도록 맞았습니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벌거벗긴 채로 군중들 앞에서 억울하게 매를 맞았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겪는 이런 상황이 억울하고 짜증나고 화도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옥에 들어와서 정신을 차리자 그 때부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것을 들은 죄수들은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바울과 실라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이후의 내용은 성도님들께서 깊이 묵상하셔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문제는 나의 생활이 힘들어 찬양도 할 수 없다는 말이 하나님 관점에서는 거짓말로 들린다는 사실입니다. 행14: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바울과 바나바가 기적을 나타내자 시민들이 그들을 신으로 생각하고 제사 드리려고 하자,  바울은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즉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바울이 고통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하나님을 찬양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똑같이 구원받은 우리도 고난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는 너희를 인도하는 자 현재의 단어로는 목회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 말씀은 7절의 확대로 성도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목회자들에게 충성할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맡겨주신 양들인 성도들에 대해 결산한다는 두려움으로 사역에 임합니다. 엄마가 슬프거나 화가 날 때는 절대로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하거나 젖병을 물리지 말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의 감정을 아기들이 그대로 받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엄마의 마음이 아플 때 그 마음을 제일 먼저 받는 대상은 갓 태어난 아기로 그들의 정서적인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목회자 또한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성도를 돌보기 때문에, 목회자의 마음이 아프고 힘들면 그 영향은 성도들이 고스란히 받아서 성도들의 신앙에 유익이 없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저자는 18절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한 것은 성도들의 기도로 더욱 활기차서 목회자들이 성도를 섬기는데 어려움이 없으며, 그 기쁨은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목회자의 입에서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확신에 찬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면, 여러분들이 출석하는 교회 목회자들을 위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 매일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힘과 용기를 얻어서 목회자들이 사명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때 잘했다. 칭찬 받을 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도 목회자들의 큰 힘과 위로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말을 마친 히브리서 저자는 20~24절에 문안인사를 합니다. 문안인사의 특징은 디모데가 옥에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 히브리서 저자 역시 온갖 핍박을 받고 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와 심판의 왕이요, 신앙의 정석이요, 구원의 완전한 보증이시며, 예수님만이 생명의 길임을 강조했다는 사실입니다. 히13:22=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 한마디에 육체와 감정을 유지하기 힘든 옥중생활을 겪다가 풀려났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오로지 믿음의 배교를 생각하는 자들을 생각해서 기록한 히브리서를 마치면서 겸손함으로 자신의 권면을 받아들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내용을 통해서 저자의 겸손과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어진 25절은 히브리서 저자가 진심을 다해 형제들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단순한 인사말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고난 받는 형제들의 영혼을 생각하고 그들을 뜨겁게 축복하고 권면해준 것으로 믿음 위에 굳게 설 것을 호소했습니다.   말씀 마지막에 이탈리아라는 이달리야에 복음의 문이 열려 그곳에 있는 성도들이 아시아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에게 문안 인사한다고 말하는 대목과 다모데에게 “우리의 형제 디모데”라고 말하면서 “그가 속히 오면 만나겠다.”는 대목에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실제 로마에 가고 싶었고, 디모데에게 ‘우리 형제(살전3:2)’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가 누구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서도 성도들을 권면하고 복음을 전하려는 그의 열성을 배워서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리고 입술의 열매인 긍정적인 믿음을 보여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심을 날마다 찬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도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오랜 기간 신앙생활 했더라도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고백하지 못하고 선뜻 자신의 미래나 비전이나 꿈을 내어드리지 못한다면 바른 신앙은 아닐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명의이전해서 나의 스승이신 주님의 뜻에 순종해서 그 길을 걷는다면 모든 것에 부족해도 예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은혜가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아멘 -]]> Sun, 06 Aug 2023 19:59:55 +0000 자유게시판 <![CDATA[2월 19일 설교]]> 성 경 : 삼상 10 : 5 8

제 목 : 삶의 소망이신 성령

  예수님만을 참 메시아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사는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깨닫고 소망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요? 원 제목은 ‘판도라의 항아리’인데 라틴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자’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느 날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여자인간을 만들 것을 지시했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여자를 보고 ‘판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제우스는 판도라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작은 상자를 선물하면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녀는 저항의 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제우스가 준 상자가 늘 궁금했습니다. 그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아주 조금 상자를 열었는데 그 순간 상자 안에 있는 욕심, 시기, 질투, 질병, 전쟁, 가난, 굶주림 등이 빠져나와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녀는 무섭기도 하고 제우스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재빨리 닫았지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희망이 상자에 갇힘으로 사람들은 지금도 고난과 고통의 시간에도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방에 서적이 없다는 것은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는 명언을 남긴 로마 최고 웅변가인 Cicero는 ‘내가 숨을 쉬는 동안 희망한다.’는 라틴어 “dum spiro spero”를 남겼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말을 ‘숨 쉬는 한 희망이 있다’는 말로 잘못 번역했습니다만, 키케로는 ‘살아 있는 것이 삶의 희망이요 원리이며 삶을 이끌어가는 힘’임을 말해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말을 되새겨보면 과연 이 정의가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아무 것이 없어도 노력하면 크게 된다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지만, 이 시대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도전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의 벽 때문입니다.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도전정신을 추구하지만, 성경은 세상과 반대로 현실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구원받는 자에게 새로운 돌파구요 중심이며 원리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사무엘상 10입니다. 사무엘상 10장은 9장과 연결됩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매우 아끼는 암나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아들 사울에게 사환 한 명을 딸려 반드시 암나귀를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3일 동안 약 40km를 걸으면서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문득 암나귀는 고사하고 자기를 걱정할 아버지를 생각하고 사환에게 집으로 가자고 말했으나, 사환은 이 근처에 선지자가 살고 있는데 내가 가진 돈이 조금 있으니 가서 암나귀에 대해 물어보자고 건의했습니다. 사울은 사환과 함께 사무엘 선지자를 만났고, 선지자로부터 암나귀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왕의 임직과 마찬가지인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열두 지파 중 가장 연약한 베냐민지파로 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거부하자 삼상10:6=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격려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로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을 확증했습니다. 사무엘의 말은 정말 응답되어 9~10절에는 사울이 떠나자 하나님은 ‘새 마음’을 주셨고, 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예언하는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하면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변한 모습에 평소 그를 알고 있는 기브아 주민들은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11절)”고 수군거리면서 놀라워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처럼 가장 연약한 사람이 나라의 왕이 된 것을 통해서 성령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는데, 성령은  

I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삼상10:9=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사무엘의 말을 들은 사울이 몸을 돌이킬 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사울에게 역사하셨습니다. 제가 “성령”이라고 말한 것은 여호와의 영(6)”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은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시도록 명령을 받은 영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10장을 보면 새 사람, 새 마음이라는 중요한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잇쉬”는 여자와 대비한 남자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이 남자를 아담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잇쉬는 대장부 기질인 탁월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왕상2:2=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죽음을 앞둔 다윗이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아들 솔로몬을 격려한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2장 3절부터 9절에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왕권을 세우기 위해 첫째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둘째는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없애야 한다고 유언했습니다. 이제 막 왕이 된 솔로몬으로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의지하는 것인지, 반대자들을 어떻게 제거해야 왕권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은 탁월한 사람이 되라는 뜻인 대장부가 되라고 격려했습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내적본질인 마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네브”는 인간의 지정의인 전인격을 가리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이나 욕망이나 말과 행동은 그것을 행하는 본인도 잘 모릅니다. 겸손한 사람이냐, 교만한 사람이냐의 기준은 이것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로 구분됩니다. 겔36: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는 성령을 통한 영적 갱신으로 새 언약의 백성 됨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바울사도를 통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빌2: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의 마음”이라 함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에 순종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겸손함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자신의 모든 개인적인 욕망과 생각을 버리고 온유함과 진리가 마음을 다스리도록 힘쓰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의 당부는 우리에게도 성령의 소망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성령을 보내서 새 마음으로 가다듬게 하시고 그 속에서 이전의 모든 욕망과 세상적인 관심과 명예와 물질에 관한 모든 욕심들을 포기하게 하고 온전히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품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비전은  

II 적절한 시기에 행동으로 보이게 했다.

  삼상10:7=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징조’는 2~6절에 나타나는 사울에게 임할 세 가지 징조를 말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나타내는 세 가지 징조를 모두 경험한 후에는 적절한 시기를 판단하고 행동으로 보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기회를 따라 행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기회를 따라 행하다’가 문자적으로는 “손이 발견하는 것을 너를 위하여 행하라”로 왕으로 부름 받은 사명을 위해서 소신껏 행동할 때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말씀은 길르앗 야베스에 침략한 암몬 자손의 사건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삼상11:6=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사울은 전령을 통해 암몬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하려고 통보했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면 길르앗 야베스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여호와의 영에 이끌려 분노하면서 사무엘과 사울을 따르지 않으면 멸망밖에 없다고 공포했습니다. 그 결과 삼십삼만 명의 군사가 일어나서 암몬을 크게 물리치고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시켰으며 그의 왕권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삼상13:15=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 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블레셋은 수없이 많은 군사와 전쟁 물자를 끌고 게바에서 2km 떨어진 믹마스에 진을 쳤습니다. 소식을 들은 사울은 국가비상상태를 의미하는 나팔을 불어 백성들을 소집했습니다만, 블레셋 군사들의 상황을 본 백성들은 두려운 마음에 동굴이나 웅덩이나 깊은 산 속에 숨었습니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민족의 위기는 생각하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 갓 지파의 땅으로 도망가서 사울 곁에 남은 병사는 겨우 육백 명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을 때와 함께 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어떤 고난이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나온 말로 구원받은 우리는 크게 공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스스로 이겨보려고 힘쓰지만 여전히 현실의 벽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떻습니까?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나 성령이 임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새로운 영을 통해 전인격적인 변화로 새 마음을 받은 나, 이전에는 자기중심적인 삶에 몰두하여 명예와 물질과 성공에 집착했으나,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예수의 이름 아래 묻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마음으로 각성해서 복음 안에서 변화된 나를 나타냄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았듯이 온유함으로 원수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계획했던 일들이 어긋났을 때에는 스트레스를 받기도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 시간표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표에 순종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급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에 화도 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 정죄했지만, 이제는 주님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슥4:6=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사람의 변화는 인간의 힘이나 실력이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만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생 한 방을 노리면서 지금도 노력하면서 꾸준히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인생 한 방은 기회를 잘 만나거나 복권이나 로또에 당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짐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영적 존재입니다. 성령이 나를 붙잡으면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내 삶의 소망인 성령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지도를 받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은혜가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여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 아멘 -]]>
Mon, 20 Feb 2023 15:32:07 +0000 자유게시판
<![CDATA[2월 12일 설교]]> 성 경 : 34 : 1 8

제 목 : 예수를 깊이 알자

    1월 첫째 주일에 받았던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살다가 주일을 맞아 예배당에 나와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는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선포된 말씀을 통해 성자 예수님을 더욱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편 34편 표제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로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이스라엘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블레셋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때 한 신하가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저 사람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를 살려두면 안 됩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미친 척 하다가 쫓겨나서 본시를 지은 것으로 사무엘상 2110절부터 222과 연관이 있습니다.   다윗은 삶과 죽음이 한 걸음 차이인 상황에서도 시편 말씀을 읽는 성도들에게 시34:8=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고 선언했습니다. 맛보다가 히브리어로는 ‘분별하기 위해 약간 먹다. 또는 마음으로 인식하다’로 다윗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선하심을 경험적으로 생생하게 느껴볼 것을 권면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을 맛보아 알라 권면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34:1=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항상 송축하다는 삶의 모든 정황에서, 즉 번성할 때나 실패해서 곤고함에 빠졌을 때 또는 안전할 때나 위험할 때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윗이 찬양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대문짝에 그적거리고 수염에 침을 흘리면서 목숨을 구하려고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삼상21:13) 이에 한 주석가는 대문짝에 그적거린 것은 최대한 미친 척 연기를 위해서 대문을 주먹으로 쾅쾅 때리면서 손톱으로 대문에 낙서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전혀 찬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찬양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맛보아 알라고 말하는 이유는,

I 예수님이 들어주시기 때문

  시34:2=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곤고한 자”는 일반적으로 고통당하는 자를 가리키나, 다윗은 고통당하는 자보다는 고통을 통해서 인내와 겸손을 배운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보다 훨씬 키 큰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이 일로 목동에서 갑작스럽게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되어 부하들을 거느리고 전쟁터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사울은 그런 그가 너무나도 든든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곁을 지키게 했으나 백성들은 왕인 자기보다는 다윗을 인정하고 더 높이 찬양하는 것에 질투가 났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장군이요, 사울의 둘째 사위인 다윗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많은 환난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응답을 체험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고 인내를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면서 삼상24:14=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영광스럽고, 위엄 있는 호칭입니다. 반면 죽은 개나 벼룩은 가장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이들은 해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존재로 사울에 대한 자신의 상대적 열등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다가 내일 죽어도 겁내지 않았으며, 죽음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다 보니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었고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시34:5=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그들은은 17절과 연결된 ‘의인’으로 ‘의인들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의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히1:3=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의 풍성한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과 함께 하시고 만물을 통치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그들에게 광채가 나타나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다윗은 환난 중에도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메시아의 구원을 찬송했습니다.

II 예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

  시34:7=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메시아는 다윗의 고백대로 다윗을 보호해주셨습니다. 결국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데 실패했지만, 다윗은 사울 다음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인 천사를 가리키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출3: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모세가 목동으로 양을 치고 있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한 말씀입니다. 모세는 사십 세가 될 때까지 애굽 왕궁에서 왕자 신분으로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뛰어난 전투경험과 두각을 나타내는 학문으로 차기 왕권을 도전하는 장래가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적들의 음모로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애굽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창46:34) 왕자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목동이 되었으니 얼마나 상실감이 컸겠습니까? 하지만 사십년 동안 목동의 삶을 살면서 인내와 겸손을 배웠습니다. 민12: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하나님께서도 인정한 온화한 성품, 다윗이 말하는 곤고한 사람의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 보건대 여호와의 사자는 곧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침내 모세는 메시아를 만났고, 명령에 따라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으로 갔습니다.   구약의 다윗이나 모세만 메시아를 맛보아 안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경에도 메시아를 분명히 알고 그분의 보호를 체험하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습니다. 고전11: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 누구도 누군가의 선생이 되어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처럼만 하라는 말을 쉽게 못합니다. 또 아무나 이런 말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자신의 편지에서 약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고 충고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전11:1, 빌3:17)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오직 그분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하면서 모든 고난과 환난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찬송하면서 회당에서나 교도소에서나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은 조상들의 믿음을 본받기 위함으로 그들의 삶을 통해 예수를 발견하고 발견한 예수를 맛보아 그들의 예수가 아닌 내 예수가 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 Philadelphia에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청소년 전도에 힘쓰던 Eliza Hewitt여사는 한 아이가 돌로 자신의 등을 때리는 바람에 7개월 동안 움직이지도 못한 채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해야하는 줄 알면서도 그 아이가 너무 밉고 갑작스러운 시련으로 자신의 신앙까지 흔들렸습니다. 그녀는 자살 충동을 일으키면서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던 어느 날, 한 흑인 아줌마가 자기도 잘 아는 찬송가를 흥얼거리면서 밝은 표정으로 청소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녀는 아줌마에게 ‘청소부 주제에 무슨 노래를 불러’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내 모든 형편을 찬송으로 부를 수 있는 힘을 주셨는데 즐겁지 않나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히윗은 모든 형편을 찬송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주님이 주셨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크게 와 닿지 않았겠지만 평생을 남의 집에서 청소하는 아줌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큰 충격으로 받았고 모든 형편을 찬송으로 바꾸는 힘에 대해 묵상하다가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성령이 스승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예수를 알게 하고 내 마음에 교훈이 되도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라는 새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를 작사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몰랐지만 정작 힘들고 고달파 삶에 즐거움이 없고 하나님에 대해 의심이 들 때도 예수를 잘 믿는다면 그것은 정말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예수님을 모르면서 주변 환경에 따라 믿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복음전파하면서 나를 본받으라고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은 고난 속에서 인내와 겸손을 배우면서 여호와를 맛보아 알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인고의 세월 속에서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분명히 알았고 죽음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히3: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믿는 도리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믿음의 응답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앞에서 누구의 고백이 아닌 자신의 순수한 고백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원자요,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신 분이요, 십자가에서 죽었으나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가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적인 예수님보다는 직접 체험해서 깨달은 예수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입맛으로는 알 수 없지만, 삶의 체험을 통해서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말할 수 없고, 억울함을 제대로 하소연할 수 없고, 인종차별을 받은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으로만 불안하게 사는 현재, 해외에서 서로 아픔을 보듬어주어도 부족한 형편에 같은 동포끼리 시기와 질투로 편 가르기 하는 모습은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다윗이나 모세처럼 예수님을 맛보아 알고 분명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아멘 -]]>
Sun, 12 Feb 2023 17:51:00 +0000 자유게시판
<![CDATA[1월 15일 설교]]> 성 경 : 약 4 : 13 – 17 제 목 :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우리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때 맞춰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도 만족하거나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의 고난을 금방 잊어버렸는지 모든 상황을 감사하지 못하고 조금만 불편해도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면서 옛 삶을 그리워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들이 말하는 레퍼토리는 출16: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 도다 쉽게 해석하면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주어 죽게 했더라면 좋을 뻔했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들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다”입니다. 그들이 언제 애굽 땅에 있는 고기 가마 곁에 편히 앉아서 마음껏 음식을 먹었었나요? 그들이 언제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했나요? 날씨가 덥다고 그늘에 쉬면서 시원한 물을 마셔가면서 일했을까요? 지금도 육체노동자들은 도로에 서 있는 나무 그늘에서 잠깐 쉬는 것이 전부인데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그들이 편하게 쉬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 애굽에서 풍요롭게 살았던 것처럼 현재의 상황을 불평하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에 탐심이 가득함을 보시고 정욕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과연 구약시대에서만 인간의 탐욕을 엄하게 다스렸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도 “부자 농부(눅12:13~20)”를 예로 들면서 인간의 탐욕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으로 예루살렘교회 감독이었던 야고보도 야고보서 4장에서 흩어진 유대인 성도들에게 ‘인간의 정욕에 의한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4장은 “싸움과 다툼의 시작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에 의한 것으로 마귀에게 조종당한다. 성도 간에 싸움과 다툼은 신앙공동체를 무너뜨리고 하나 됨을 파괴시킨다. 성도는 마귀와 담대히 싸워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서로 판단하거나 비방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선을 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런 일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하라(7절)’고 말했습니다. 탐욕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주변 상황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위주로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행동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탐욕으로 표현된 욕망들을 물리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I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약4:8=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 하신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마음을 순결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가까이 한다”는 것은 기독교 핍박 이후에는 종말사상과 연결되어 해석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사상은 예수님의 심판으로 이어지는 지구의 종말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 씻음을 통한 자녀의 회복으로 천국에 가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벌인 불지옥으로 내려갑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됨을 공포하면서 성도들에게 세상소망보다 더 좋은 천국소망을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손을 깨끗하게 하다”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0장 17~21절에서 제사장의 중요한 임무로 성소와 제단 사이에 놋으로 물두멍을 세우고,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기 전에 먼저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제단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직분을 행해야 한다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하나님을 향한 도덕적 순결로 해석했습니다. 사람이 저지른 대부분의 범죄는 손과 발로 행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손을 깨끗하게 하라고 요구한 것은 “죄를 범하지 말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는 회개에서 나타나는 영적 순결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세상도 사랑해서 죄를 범해서는 안 됨이 포함되었습니다. 갈5: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바울을 통해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다른 마음을 품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른 마음에 대해 야고보는 ‘두 마음’으로 기록하면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행위라고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나요? 예배당에 나와 예배드리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다면 그 역시 다른 마음에 속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에서 열정을 가지고 이런저런 봉사를 하지만, 사실은 봉사 명목으로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챙기려 한다면 그 역시 다른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통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묵상해보십시오 빌1:17=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니라 성도들은 예수 믿는다는 죄목으로 감옥에서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아 고통으로 괴로워하는데, 자기들보다 늦게 들어온 바울은 고난과 핍박에도 시위대 군사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들도 질투심에 불타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순결한 상태에서 마음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II 언행일치의 삶을 살라 약4: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고 할 것이거늘 쉬운 말로 해석한다면 “그런 까닭에 너희가 마땅히 말하기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며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말해야 하거늘”입니다. 입으로는 주님의 뜻이면 응답받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이런 것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고백하지만, 막상 생각으로는 언제 무엇을 할 것이며 언제까지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여기까지 이렇게 할 것이라는 계획들을 세우고 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성도는 인생의 덧없음과 매우 짧음을 고백한다면 더 이상 자기위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비방하지 말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는 13절에서 예수님이 교훈하셨던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 눅12: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유대 땅에 아주 부자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해 엄청난 풍년을 맞았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곡식창고로는 수확한 농산물들을 다 저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번 기회에 낡고 작은 창고를 부수고 크고 넓은 창고를 지어 농산물들을 다 저장하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 편하게 살면 좋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자 그의 계획을 아신 하나님께서 부자 농부에게 ‘그래 아주 훌륭하고 멋진 계획이구나. 그런데 너는 이것을 생각해 보았니, 내가 오늘 밤 네 영혼을 가지고 간다면 네가 준비한 모든 것은 어떻게 될 것 같니’질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농부에게 질문한 말씀에는 심오한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의 수명을 조절하신다. 죽고 사는 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조절되지 않습니다. 물론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노력으로 자기 수명이 조절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인간의 수명을 다스리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의 계획을 조절하신다. 인간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막으면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삶에서 이런 것들을 체험했기 때문에 우리가 고백해야 하는 것은 잠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는 말씀처럼 하나님만이 내 삶의 인도자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준비할 수 있을 때 준비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 준비가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성도들이 아무리 경건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힘써도 주변의 다양한 유혹 때문에 제대로 예수 믿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오죽하면 사도 요한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물리치라고 가르쳤을까요. 이런 것을 볼 때 “믿음은 전투요, 노력이며,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 말씀을 멀리하려는 악한 마음과 날마다 전투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게으르고 싶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유혹들을 물리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비방하려는 악한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멀리하고 자기 마음에 끌리는 대로 행동하려는 영적전투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신앙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서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깨닫지 못하면 세상 유행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것이 예수님의 말씀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욕심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야고보는 이런 사실을 미리 예견하고 서신을 통해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한다. 말씀에 순종해서 형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오직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 있는 온갖 탐욕과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만족을 얻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허락해 주신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결단을 통해서 비록 내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광야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A MEN]]>
Mon, 16 Jan 2023 22:44:37 +0000 자유게시판
<![CDATA[1월 8일 설교 원고]]> 성 경 : 16 : 11 - 15

제 목 : 과거에서 얻는 교훈

    구주 예수님의 크신 은혜가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 설교에 성경에는 아닥사스다 왕만 기록되었지만 그 왕이 아닥사스다 I세 인지, 아닥사스다 II세 인지는 세계역사를 연구하면서 찾아봐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주간 들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직접 확인해보셨는지요? 들은 말씀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베뢰아 사람들이 보여준 신앙모습 때문입니다. 행17:11=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너그럽다는 가문이 좋은, 고귀한 뜻이지만 본문에서는 ‘편견 없는 태도’로 해석되었습니다. 베뢰아교회 성도들은 진리 앞에서는 편견 없이 객관적인 자세로 바울사도가 선포한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서는 들은 말씀을 생활에서의 체험과 그리스헬라 철학을 바탕으로 매일 구약성경을 연구하여 그 사실을 확인하면서 진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과연 천 년 전에 조상들이 광야 여정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 지냈는지, 그 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살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믿음의 결단이요, 복음에 대한 확증입니다. 결단할 마음의 준비가 되셨다면 저와 함께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의 세계로 가보겠습니다.  

I 광야 여정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출16:4=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16장 시작을 “애굽에서 나온 지 둘째 달 십오일(1절)”이라는 역사적인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애굽을 떠난 지 30일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출12:39=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린 재앙을 받다가 열 번째 재앙인 사람이든 가축이든 첫째가 죽는 재앙을 맞이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속하게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효되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들고 급히 나왔습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30일이 지나자 가지고 온 음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원망소리를 들으시고 하늘에서 음식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슬을 통해서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내리셨다고 기록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메추라기는 철새 떼로 하나님은 바람을 통해서 철새 떼를 지면에서 약 1m 높이까지 쌓이게 해서 백성들이 쉽게 새를 잡아 요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역사적인 교훈을 천 년이 지난 에스라, 느헤미야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백했고, 그와 같은 기적이 바벨론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체험했음을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베뢰아 성도들처럼 광야의 역사를 삶의 체험을 통해서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과거에 광야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채워주신 것을 체험했는지? 나도 광야에서 백성들이 직접 체험한 것처럼 확실한 기적을 체험했는지? 신앙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기적을 체험해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늘 부족한 것만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깨어 있으면 체험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기적을 베풀어주셨는지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II 그러면 왜 행복하지 못했을까?

출16:20=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매일 아침 일인당 한 오멜씩 양식을 거두라 그리고 그것을 다음날 아침까지 보관하지 말고 하루에 모두 소비시켜라(16~19)”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의식주문제는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내일을 위한 삶을 살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최대 주제는 월화수목토토일입니다. 주 4일 근무하되 월급은 주 6일 근무할 때와 똑같이 받는 것이죠. 그만큼 사람들은 일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좀 더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사는 백성들에게 해 뜨기 전에 나와서 한 사람당 한 오멜인 약 2.2리터의 만나와 열 호멜인 약 2,200리터의 메추라기(11:32)를 거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풍족하게 공급해주셨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백성들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가는 것이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피곤을 줄이기 위해 한 번에 많이 거두어 보관했다가 먹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다 썩었고 백성들이 모여 사는 진영에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탐욕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민11:34=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기브롯은 ‘무덤’, 하다아와는 ‘욕망’이라는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풍족하게 주셨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욕망에 이끌려 자기 욕심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모세는 생존한 백성들과 함께 공동묘지를 만들어 그 이름을 욕망의 무덤으로 지어 이스라엘자손 대대로 교훈 삼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이 지역이 바란 광야 근처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마음껏 음식을 먹는 것은 식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먹고 싶은 음식 때문에 배부른 상태에서 계속 먹는 것은 식탐에 의한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음에도 음식에 욕심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탐욕과 식탐의 의미를 배우게 되는데, 탐욕은 지나치게 욕심을 내서 나타난 행동이며, 식탐은 먹을 것을 몹시 욕심내는 것입니다. 출16:18=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하나님의 방법이 얼마나 멋지고 우리에게 딱 맞는지 이제 확인하셨는지요? 한 오멜은 지금의 도량형으로 약 2,2리터, 한 호멜은 약 220리터의 양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면 자신이 생각했던 기준과는 달라도 매일의 필요를 넉넉하면서도 충분하게 공급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광야와 같은 외국에서의 삶은 매일 부족함의 연속이요, 언제 무슨 사건이 발생할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이라 잉여분의 재산을 미리 챙기는 것은 분명 지혜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대비책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께서 채워주심을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 행동하면 비 신앙적인 모습으로 책망 받을 것입니다. 사2:22=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샘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인간의 생명은 코를 통해 내뿜는 호흡이 붙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호흡이 멈췄다”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으면서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순종하면서 살라고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넉넉하게 채워주신 과거의 기적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현재도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기를 간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조상들의 광야 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대대로 내려오는 신앙교육이 얼마나 훌륭하고 완벽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 역시 바벨론에서 비슷한 체험을 하면서 과거의 하나님이 현재 자신들의 하나님이 됨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도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를 회개하고 철저히 하나님을 믿을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 결과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로 죄의 요소들을 모두 버리는 각성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러한 믿음의 작업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생각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웠던 한국에서의 삶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여유만 생기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이런저런 대비책들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리면서 살았던 삶을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이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광야에서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주변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만 자신이 원하는 예수님의 모습만 믿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다가 독일에서 살다보니 한국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과거에 얽매여 지금의 삶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마태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6: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예수님은 부정과거인 “하지 말라”를 통해서 ‘조금도 염려하지 마라’는 절대금지를 말하셨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왜 의식주가 고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그 달 받은 월급을 몽땅 다 쓰고 대책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예수님도 받은 것을 대책 없이 사치하면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령을 하신 것은 물질에 자신의 삶의 목적을 두지 말라는 의도입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지도로 영적각성운동을 일으킨 백성들은 세상에서 유행하는 물질이나 명예에 자신의 삶의 목적을 두면서 살았던 과거를 회개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믿음으로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그것이 완벽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미 세상은 젊을 때부터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한 결과물이 허무함을 증명했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두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마음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하루 먹을 수 있는 분량만 있으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내일도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고 나눔과 베풂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Sun, 08 Jan 2023 17:26:35 +0000 자유게시판
<![CDATA[설교 동영상 업로드와 비대면 예배 종료 안내]]> Tue, 23 Aug 2022 19:07:57 +0000 자유게시판 <![CDATA[7월 31일 주일 예배 안내]]> Wed, 27 Jul 2022 15:02:40 +0000 자유게시판 <![CDATA[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Mon, 11 Apr 2022 16:50:09 +0000 자유게시판 <![CDATA[양해를 부탁드립니다.]]> Fri, 21 Jan 2022 07:17:54 +0000 자유게시판 <![CDATA[말씀 카드 활용 제안]]> Wed, 12 Jan 2022 09:26:29 +0000 자유게시판 <![CDATA[성령강림절을 향하여]]> Mon, 05 Apr 2021 16:30:53 +0000 자유게시판 <![CDATA[고난주간 기도회]]> Mon, 29 Mar 2021 11:05:55 +0000 자유게시판 <![CDATA[성탄, 신년 예배 안내]]> '감사'를 생각할 때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거나 무엇가 성취되었을 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감사하다고 고백했습니다(시5:11~12) 우리도 주님의 은혜로 천국 시민 자격을 얻은 자답게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위기 속에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독일 정부에서는 12월 16일부터 2021년  1월 10일까지 전면적인 lockdown을 발표했습니다. 교회협의회에서도 주일예배는 거리두기와 방역을 전제로 예배를 허용했으나 다같이 부르는 찬송을 금했습니다. 그리고 성탄예배와 신년예배는 비대면으로 전환했습니다. 저희들도 이 조치에 따라 성탄과 신년예배는 비대면으로 전환하기로 제직회에서 결정했습니다. 12월 25일 성탄예배와 1월 1일 신년예배는 오후 12시에 YouTube를 통해 예배 실황을 하겠습니다. 유투브 검색에서 브레멘한민교회를 치셔서 함께 예배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성도님들의 가정과 생업 위에 풍성하시기를 기도합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Wed, 16 Dec 2020 10:25:27 +0000 자유게시판 <![CDATA[예배 중계 안내]]> "브레멘한민교회"을 적으시고 실행시키면 됩니다. 아울러 부탁 드리는 것은 브레멘한민교회를 실행시키신 후 "구독" 눌러주시면 스트리밍을 시작할 때마다 알림이 울릴 것입니다. 매 주일 오후 1시 50분에 스트리밍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많이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가정과 생업 위에 주님의 기름 부어주심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Fri, 03 Jul 2020 10:52:43 +0000 자유게시판 <![CDATA[설교 동영상 안내]]> Sun, 31 May 2020 18:42:17 +0000 자유게시판 <![CDATA[예배를 위한 안내]]> X 표시된 종이는 만지지 마세요. 9) 예배가 마치면 입구에서부터 퇴실합니다. 10) 예배가 끝난 후 마당의 모임도 금지되며, 가능한 바로 귀가해주세요. 11) 부부 외에는 같이 앉을 수 없습니다(자녀와도 합석 금지) 12) 주보를 만들어 나눠드릴 수 없으나 교회 홈페이지에 미리 올려놓겠습니다. * 기저질환, 호흡질환, 발열, 기침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분은 집에서 예배드려주세요. 모쪼록 3월 15일(주일) 이후 첫 예배가 은혜 가운데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시37:5=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건강에 유념하면서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뿐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Thu, 28 May 2020 10:37:24 +0000 자유게시판